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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75만 달러에 팔릴 뻔했다. 7년 뒤 첫 차고가 있던 집을 110만 달러 넘게 주고 샀다

구글은 1999년 무렵 엑사이트에 75만 달러 안팎으로 매각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해 매출은 22만 달러, 순손실은 608만 달러였다. 거절한 쪽 CEO는 이유가 가격이 아니라 조건이었다고 말했고, 2006년 구글은 첫 차고가 있던 집을 110만~130만 달러에 사들였다.

작성: Small Start 편집부. 수록 사례의 숫자는 한 건씩 직접 세고 있습니다. 사실은 출처에, 판단은 편집부에 있습니다.

구글은 75만 달러에 팔릴 뻔했다. 7년 뒤 첫 차고가 있던 집을 110만 달러 넘게 주고 샀다

2006년 9월 8일, 구글은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있는 단층집 한 채를 샀다. 바닥 면적은 1,900제곱피트, 가격은 110만 달러에서 130만 달러 사이로 기록되어 있다. 8년 전인 1998년 9월, 두 창업자가 임대료 1,700달러에 차고를 빌렸던 집이다.

그 8년 사이에 숫자가 하나 더 있다. 1999년 초 무렵 구글은 회사째로 75만 달러 안팎에 팔릴 뻔했다고 전해진다. 상대는 당시의 대형 포털 엑사이트였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대개는 엑사이트가 싼 매물을 놓쳤다는 교훈으로 끝난다.

그런데 거절한 쪽 당사자는 가격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창업기의 숫자를 각각 누가 공개했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늘어놓는다.

기숙사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임대료 1,700달러의 차고까지

시기일어난 일출처에 있는 숫자
1995년스탠퍼드에서 브린이 입학 예정자 페이지에게 캠퍼스를 안내함기재 없음
1996년두 사람이 기숙사 방에서 링크를 단서로 삼는 검색엔진 BackRub를 만듦기재 없음
1998년 8월썬의 공동 창업자 앤디 벡톨샤임이 수표를 씀10만 달러
1998년 9월캘리포니아주에서 법인 설립기재 없음
1998년 9월멘로파크의 차고를 빌림임대료 1,700달러
1998년~1999년 초엑사이트로의 매각이 논의되었으나 성사되지 않음75만 달러 안팎
1999년 여름까지세쿼이아와 클라이너 퍼킨스에서 조달2,500만 달러
1999년 9월베타판 검색 수하루 약 350만 회, 최대 초당 65회
1999년 연간매출과 손익매출 22만 달러, 순손실 608만 달러
2001년 연간첫 흑자매출 8,643만 달러, 순이익 699만 달러
2006년 9월차고가 있던 집을 사들임110만~130만 달러
2006년 10월유튜브 인수주식 16.5억 달러

공식 연혁은 벡톨샤임의 10만 달러 수표로 구글이 정식으로 태어났다고 적는다. 상장 신고서(S-1)는 법인 설립을 1998년 9월로 적었다. 나란히 놓으면 수표가 회사보다 먼저다.

차고의 주인 수전 워치츠키는 이후 구글의 16번째 직원이 되었고, 유튜브의 CEO가 되었다. 집을 사들인 다음 달, 구글은 바로 그 유튜브를 주식 16.5억 달러에 샀다.

75만 달러 이야기에는 화자가 둘 있다

첫 번째는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다. 2010년 TechCrunch 행사 무대에서 그는 구글이 100만 달러 미만에 팔 생각이 있었는데 엑사이트가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사는 이야기에 따르면이라고 단서를 단 뒤, 두 사람이 원한 100만 달러를 코슬라가 75만 달러까지 낮췄지만 엑사이트 CEO 조지 벨이 둘 다 거절했다는 경위를 소개한다. 이 판본에서 이야기의 중심은 가격이다.

두 번째는 거절한 당사자 벨 본인이다. 2014년 팟캐스트에서 벨은 조건이 현금 75만 달러와 엑사이트 주식 약 1%였다고 기억한다고 말했고, 경제 조건은 엑사이트에 나쁘지 않았다고도 했다. 시기는 1998년이었을지도 모른다며 흐릿했고, 당시 구글은 직원이 서너 명으로 아직 스탠퍼드 안에 있었다. 성사되지 않은 이유로 벨이 든 것은 페이지의 조건이었다. 자신들이 엑사이트에 온다면 엑사이트의 검색 기술을 전부 걷어내고 구글의 것으로 바꿀 것. 엑사이트에는 그 시점에 수백 명의 엔지니어가 있었다. 그 문화를 흔드는 위험은 감당할 수 없었다고 벨은 말한다.

두 판본이 일치하는 것은 75만 달러라는 숫자뿐이다. 투자자의 판본에서는 가격이, 거절한 당사자의 판본에서는 조건이 결렬의 이유가 된다. 가격으로 결정되지 않은 매각이었는데, 전해진 것은 가격뿐이었다.

팔릴 뻔한 해의 회사는 매출 22만 달러, 적자 608만 달러였다

S-1의 선택 재무 데이터(천 달러 단위)를 다시 늘어놓으면 팔릴 뻔한 전후의 규모가 보인다.

연도매출순손익
1999년22만 달러608만 달러 손실
2000년1,911만 달러1,469만 달러 손실
2001년8,643만 달러699만 달러 이익
2002년3억 4,785만 달러9,966만 달러 이익
2003년9억 6,187만 달러1억 565만 달러 이익

엑사이트와의 이야기는 이 표의 1999년이 시작되는 무렵에 있다. 2,500만 달러 조달도 하루 350만 회 검색도 아직 앞의 일이었고, 회사의 실체는 직원 서너 명과 연구실의 검색엔진이었다. 75만 달러라는 값은 그 시점의 회사에 붙은 값으로 보면, 너무 싸다고도 너무 비싸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매출이 1년에 약 87배가 된 것은 2000년이고, 흑자는 2001년에 왔다. 나중에 보면 75만 달러 이야기는 이 표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다. 그런데 이야기될 때는 늘 이 표의 마지막 줄과 나란히 놓인다.

값을 정한 것은 구글의 내용물이 아니라 엑사이트가 누구였느냐였다

벨의 증언을 읽으면 이 거래에서 값을 정하던 것이 보인다. 구글의 기술이 얼마나 좋았느냐가 아니다. 그것을 들인다는 것이, 수백 명의 엔지니어가 만들어 온 엑사이트 자신의 검색을 버린다는 뜻이었다는 점이다.

같은 75만 달러라도 검색을 자체적으로 갖지 않은 회사에는 싼 부품이고, 검색을 자체적으로 가진 회사에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조건이 된다. 편집부는 이 결렬을 엑사이트의 안목 실패로 보지 않고, 매수자의 입장이 값을 정하는 구조의 예로 읽는다. 사업에 붙는 값을 정하는 것은 판 쪽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는 쪽이 누구냐다.

같은 구조는 훨씬 작은 매각에서도 기록되어 있다. Traffic Think Tank는 2020년에 들어온 인수 제안을 대부분 거절했고 2023년에 180만 달러에 팔았는데, 매수자 Semrush가 취득 목적으로 적은 것은 브랜드와 콘텐츠였다. MENTA는 창업자의 30번째 개인 개발로, 월매출 140만 엔 시점에 랜서스에 주식을 양도했다. 두 경우 모두, 값보다 먼저 매수자가 무엇을 원했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다.

당사자의 기억은 11년 뒤와 15년 뒤의 것이다

한계를 먼저 적어 둔다. 엑사이트와의 협상을 당시의 서류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남아 있는 것은 2010년 투자자의 발언과 2014년 당사자의 증언뿐이고, 둘 다 사건으로부터 10년 이상 지나서 나온 이야기다. 시기도 1999년 초와 1998년 무렵으로 맞지 않고, 가격도 100만 달러에서 깎았다는 판본과 현금 75만 달러에 주식 약 1%를 더한 판본이 있다.

차고 임대료 1,700달러는 기록 쪽에 기간이 적혀 있지 않다. 월세라고 쓰는 기사가 많지만 여기서는 숫자만 그대로 두었다. 집 구입액도 110만~130만 달러라는 폭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S-1의 숫자는 연간 값이어서 협상이 오간 시점의 회사 숫자가 아니다.

반대로 서류로 확인되는 숫자는 분명하다. 10만 달러 수표와 두 사람이 만난 해는 회사의 공식 연혁에, 법인 설립 달과 해마다의 매출은 법정 공시에, 유튜브 인수액은 인수 때의 공시에 각각 남아 있다.

75만 달러는 구글의 값이 아니었다

다 늘어놓고 나서 편집부 손에 남은 것은 75만 달러라는 숫자가 다뤄지는 방식이었다. 이야기될 때 이 숫자는 늘 구글의 값으로서 2003년 매출 9억 6,187만 달러와 나란히 놓인다. 하지만 거절한 본인의 말대로 읽으면, 그것은 1990년대 말의 엑사이트가 자기 검색 팀을 내려놓는 조건에 얼마를 매겼느냐의 숫자에 가깝다.

2006년에 치른 110만 달러 남짓은 그 숫자보다 크다. 팔릴 뻔한 회사가, 팔릴 뻔하던 무렵의 장소를 그때 제시받은 값보다 높은 금액에 되샀다. 창업기의 전설로 남는 것은 75만 달러 쪽이고, 장부에 남는 것은 110만 달러 남짓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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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Small Start에 수록된 사례(모두 출처를 밝힌 공개 정보)의 집계와 공개 정보 분석에 근거한 편집부의 견해입니다. 특정 사업·투자·부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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