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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생일은 세 개다. 악수의 1964년, 법인의 1967년, 사명의 1971년. 처음 7년은 남의 신발을 파는 대리점이었다

나이키의 공식 읽을거리는 1964년 1월 25일의 악수로 블루 리본 스포츠가 태어났다고 쓴다. 연차 보고서는 NIKE, Inc.가 1967년 오리건주에서 법인화되었다고 쓴다. 사명이 나이키가 된 것은 1971년 5월로 전해진다. 첫해에는 일본산 신발 1,300켤레를 팔아 8,000달러. 1971년에는 공급처 오니쓰카가 지분 51%를 요구했고, 이듬해 관계가 끝났다.

작성: Small Start 편집부. 수록 사례의 숫자는 한 건씩 직접 세고 있습니다. 사실은 출처에, 판단은 편집부에 있습니다.

나이키의 생일은 세 개다. 악수의 1964년, 법인의 1967년, 사명의 1971년. 처음 7년은 남의 신발을 파는 대리점이었다

나이키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어떤 서류를 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의 공식 읽을거리는 1964년 1월 25일 토요일 낮, 포틀랜드의 호텔에서 필 나이트와 빌 바워먼이 악수한 순간에 블루 리본 스포츠가 태어났다고 쓴다.

매년의 연차 보고서는 다른 해를 쓴다. NIKE, Inc.는 1967년 오리건주 법률에 따라 법인화되었다고. 그리고 사명이 나이키가 된 것은 기록을 모은 백과사전에 따르면 1971년 5월이다. 악수, 법인, 사명으로 생일이 세 개다.

세 날짜 사이에 있는 것은 나이키가 아직 나이키가 아니던 7년이다. 그동안 블루 리본 스포츠가 판 것은 자기 신발이 아니었다. 상장한 회사는 이 사이트의 사례 게재 기준 밖에 있으므로, 사례가 아니라 칼럼으로 그 7년만 숫자로 따라간다.

1964년의 악수부터 1972년 공급처와의 결별까지

시기일어난 일숫자출처
1964년 1월 25일포틀랜드의 호텔에서 악수, 블루 리본 스포츠 탄생기재 없음공식 읽을거리
1964년첫해, 일본산 러닝화를 팖1,300켤레·8,000달러백과사전
1965년둘째 해 매출2만 달러백과사전
1966년악수 2년 뒤 첫 계약서에 서명. 샌타모니카에 첫 매장기재 없음공식 읽을거리·백과사전
1967년오리건주에서 법인화기재 없음연차 보고서
1971년공급처 오니쓰카가 지분을 요구51%백과사전
1971년 5월 30일정식으로 Nike, Inc.가 됨기재 없음백과사전
1971년 6월 18일스우시 마크를 처음 사용기재 없음백과사전
1972년오니쓰카와의 관계가 끝남기재 없음백과사전

공식 읽을거리가 적은 것은 악수의 날짜와 장소, 첫 계약서가 2년 뒤였다는 것뿐이고, 출자액도 처음 몇 켤레를 들였는지도 적지 않았다. 숫자는 모두 연차 보고서와 기록을 모은 백과사전 쪽에 있다.

첫 계약서는 악수 2년 뒤였다

공식 읽을거리에는 눈길을 끄는 한 줄이 있다. 두 사람이 첫 계약서에 서명한 것은 악수 2년 뒤였다. 회사의 탄생으로 이야기되는 악수는 법적으로는 아무 약속도 아니었던 셈이다.

1966년에 계약서를 주고받고 1967년에 법인이 되었다. 악수에서 법인까지 3년. 그사이 첫해의 1,300켤레·8,000달러는 둘째 해에 2만 달러로 늘었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지만, 계약서와 법인은 매출이 그런 형태를 필요로 할 만큼 커진 뒤에야 따라왔다고 읽힌다.

처음 7년간 판 것은 남의 회사 신발이었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일본 오니쓰카의 신발을 미국에서 파는 대리점으로 시작했다. 첫해의 1,300켤레도 일본산 러닝화다. 파는 방식은 육상 경기 대회에서 나이트의 차에서 직접 파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리점 장사는 공급처가 상품을 계속 만들어 주는 한 이치에 맞는다. 팔리는 신발을 찾는 수고도, 만드는 수고도 필요 없다. 다만 그 장점은 공급처와의 관계가 이어지는 동안만의 것이다.

1971년 오니쓰카는 블루 리본 스포츠 지분의 51%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과반을 쥐겠다는 요구다. 관계는 이듬해 1972년에 끝났다. 사명이 나이키가 되고 스우시 마크가 처음 쓰인 것이 바로 이 1971년이었다. 자기 이름과 마크는 공급처와의 관계가 흔들린 해에 나왔다.

편집부는 이 순서를 우연이 아니라 구조로 읽는다. 남의 상품을 파는 사업은 매출이 늘수록 공급처에게도 가치가 커지고, 공급처가 조건을 바꿀 이유도 커진다. 자기 이름과 마크를 갖는 것은 그 구조에서 빠져나가는 출구였다.

마크도 쓰기 시작하고 2년 반 뒤에 등록되었다

날짜의 어긋남은 생일만이 아니다. 스우시 마크가 처음 쓰인 것은 1971년 6월 18일이고, 미국 특허상표청에 등록된 것은 1974년 1월 22일로 전해진다. 쓰기 시작해서 법적으로 자기 것으로 지켜지기까지 2년 7개월이 걸렸다.

첫 매장도 악수 2년 뒤인 1966년이었다. 샌타모니카 길가에 연 한 곳이고, 그때까지 매장은 경기 대회장과 자동차였다. 회사의 형태도, 이름도, 마크도, 매장도 매출이 먼저 서고 서류와 장소가 나중에 따라왔다. 창업 이야기는 악수의 한순간으로 정리되지만, 기록 위에서 이 회사는 7년에 걸쳐 조금씩 자기 것을 늘려 갔다.

공급처 의존은 작은 사업의 사인이 되기도 한다

남의 상품이나 플랫폼 위에서 장사하는 위태로움은 자릿수가 작은 사업의 기록에도 나온다. 문을 닫은 사례의 사인을 센 11건의 칼럼에서는 자금 고갈보다 많은 사인 가운데 하나가 플랫폼 의존이었다. 10년 운영한 아마존 셀러 계정은 남의 매장 위의 사업 자체가 사고팔린 예다.

다른 전설적인 회사와 나란히 놓은 목록은 전설적인 창업 22곳을 출처까지 추적한 칼럼에 있다.

확인한 범위

한계를 적어 둔다. 첫해의 1,300켤레·8,000달러와 1965년의 2만 달러는 백과사전의 정리로 확인한 것이고 당시의 장부가 아니다. 창업자 두 사람이 각각 얼마를 냈는지, 오니쓰카에서 처음 몇 켤레를 들였는지는 읽은 범위의 출처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사명이 Nike, Inc.가 된 날은 백과사전의 1971년 5월 30일이라는 기술에 따랐다. 오니쓰카와의 관계가 끝난 방식의 자세한 내용도 읽은 범위에서는 알 수 없었다.

악수의 이야기와 세 개의 날짜와 51%

나이키의 창업기는 공식 읽을거리에서는 악수의 한 장면으로 이야기된다. 서류 쪽에서는 악수, 계약서, 법인, 사명이 날짜를 조금씩 어긋내며 쌓여 간다. 그 어긋남 속에 7년간의 대리점 시대가 있다.

전설이 악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 회사가 자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1971년의 51%라는 숫자라고 편집부는 생각한다. 남의 신발을 팔던 회사가 공급처에 과반을 요구받은 해에 자기 이름과 마크를 만들었다. 생일이 세 개인 것은 이 회사가 세 번에 나뉘어 태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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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Small Start에 수록된 사례(모두 출처를 밝힌 공개 정보)의 집계와 공개 정보 분석에 근거한 편집부의 견해입니다. 특정 사업·투자·부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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