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첫 제품은 열흘에 10엔어치도 팔리지 않았다. 회사를 이어 준 것은 남이 주문한 부품 1,000장의 이익 80엔이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1918년에 시작한 사업의 밑천은 퇴직금 33엔 20전, 회사 적립금 42엔, 저금 20엔 정도로 100엔에 미치지 못했다. 네 사람이 만든 개량 소켓은 열흘에 10엔어치도 팔리지 않았고 두 사람이 떠났다. 그해 사업을 이어 준 것은 가와키타전기에서 받은 선풍기 애반 1,000장 주문으로, 이익은 80엔이었다.
작성: Small Start 편집부. 수록 사례의 숫자는 한 건씩 직접 세고 있습니다. 사실은 출처에, 판단은 편집부에 있습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독립할 때의 밑천은 내역까지 알려져 있다. 퇴직금 33엔 20전, 직장 적립금 42엔, 저금 20엔 정도. 다 합쳐도 100엔에 닿지 않았다.
그 돈으로 네 사람이 개량 소켓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노스케와 처남 이우에 도시오, 그리고 예전 동료 두 사람. 완성된 소켓은 열흘에 10엔어치도 팔리지 않았다. 동료 두 사람은 떠나갔고, 남은 것은 고노스케와 이우에 두 사람이었다.
이 글에서는 파나소닉이 시작한 첫 1년을, 회사사와 본인의 회상을 근거로 한 정리를 바탕으로 숫자로 따라간다. 회사 공식 사이트의 연혁 페이지는 가져오지 못해, 근거를 밝힌 제3자의 정리에 기댔다. 상장한 회사는 이 사이트의 사례 게재 기준 밖에 있으므로, 사례가 아니라 칼럼으로 첫 1년만 다룬다.
1917년 봄의 소켓부터 1918년 3월 창립까지
| 시기 | 일어난 일 | 숫자 |
|---|---|---|
| 1917년 봄 | 일하면서 소켓 개량에 착수 | 기재 없음 |
| 1917년 6월 | 오사카전등을 그만둠 | 퇴직금 33엔 20전 |
| 1917년 | 밑천을 마련 | 적립금 42엔·저금 20엔 정도, 합계 100엔 미만 |
| 1917년 | 네 사람이 소켓을 만들기 시작 | 4명 |
| 1917년 | 만든 소켓을 팔러 내놓음 | 열흘에 10엔 미만 |
| 1917년 | 예전 동료 두 사람이 떠남 | 남은 것은 2명 |
| 1917년 | 가와키타전기에서 선풍기 애반을 수주해 연내에 납품 | 1,000장·이익 80엔 |
| 1918년 3월 7일 | 오사카시 오히라키초에서 마쓰시타전기기구제작소 창립 | 기재 없음 |
| 1932년 | 회사 창업 기념일을 정함 | 5월 5일 |
숫자의 근거는 마쓰시타전공 60년사와 메이지 이후 기업사 사전, 그리고 고노스케 본인의 회고록이다. 소켓이 팔린 정도처럼 힘든 장면의 숫자에는 본인의 회상이 섞여 있다.
밑천의 내역에는 직장 적립금이 들어 있었다
100엔에 못 미치는 밑천의 내용을 보면 절반 가까이가 직장 적립금이다. 퇴직금과 적립금을 합치면 75엔 20전이고, 자기 저금은 20엔 정도뿐이다. 독립 자금의 대부분은 그만둔 회사에서 받은 돈이었다.
밑천 이야기는 자기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이야기되기 쉽다. 고노스케의 밑천은 일한 시간을 돈으로 바꾼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이 내역이 현실에 가깝다. 그만둘 때 받는 돈이 그대로 첫 매입이 된다.
자기 제품은 열흘에 10엔도 안 됐다
네 사람이 만든 개량 소켓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열흘에 10엔 미만. 밑천의 1할에도 못 미치는 매출에 네 사람 중 둘이 떠났다.
여기서 편집부가 단언하고 싶은 것은 첫 자사 제품이 실패했다는 점이다. 훗날 거대한 가전 회사가 되는 회사의 첫 제품이 팔리지 않아 사람을 잃었다. 이 실패가 기록에 남은 것은 본인이 훗날 그것을 썼고 회사사가 그것을 인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를 이어 준 것은 남이 주문한 부품이었다
사업을 이어 준 것은 자기 제품이 아니었다. 가와키타전기에서 선풍기에 쓰는 애반을 1,000장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왔다. 두 사람은 그것을 연내에 납품했고 이익은 80엔이었다.
80엔은 밑천 100엔 가까이에 해당한다. 팔리지 않은 소켓의 열흘 매출의 8배를 넘는다. 이 시점에서는 스스로 고안한 제품보다, 남의 제품 부품을 주문대로 만드는 일이 훨씬 확실한 벌이였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지만, 이 순서는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자주 밟는 형태에 가깝다고 읽는다. 자기 제품으로 시장에 나가고, 팔리지 않고, 손에 있는 기술을 남의 일에 빌려 자금을 잇고, 그 뒤에 자기 제품으로 돌아온다. 회사가 정식으로 창립된 것은 애반을 납품한 뒤인 1918년 3월이다.
회사보다 장사가 먼저 있었다
날짜를 나란히 놓으면 또 하나의 순서가 보인다. 고노스케가 오사카전등을 그만둔 것은 1917년 6월이고, 마쓰시타전기기구제작소를 창립한 것은 1918년 3월 7일이다. 그사이 약 9개월 동안 소켓을 만들어 팔고, 팔리지 않아 두 사람을 잃고, 애반 주문을 받아 납품했다.
회사라는 형태가 생기기 전에 장사는 한 차례의 부침을 다 겪었다. 창립 날짜는 사업이 시작된 날이라기보다, 살아남은 사업에 이름과 형태를 준 날에 가깝다. 악수에서 법인화까지 3년이 걸린 나이키의 세 생일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서류의 날짜는 장사 뒤에서 따라왔다.
수탁으로 버티며 자사 제품으로 나아가는 모양은 작은 사업에도 있다
남에게서 받은 일의 이익으로 자기 제품을 세운 기록은 자릿수가 작은 사업에도 있다. 수탁으로 MRR 1만 5,000달러를 만들고 그 돈으로 SaaS를 세운 사례는, 50세의 사실상 1인 사업으로서 서비스에서 제품으로 옮겨 가는 구조를 공개했다.
다른 전설적인 회사와 나란히 놓은 목록은 전설적인 창업 22곳을 출처까지 추적한 칼럼에 있다.
창립일과 창업 기념일은 다르다
기록 위에서 눈길을 끄는 점이 하나 더 있다. 회사가 창립된 것은 1918년 3월 7일이지만, 회사가 정한 창업 기념일은 5월 5일이다. 그 기념일을 정한 것은 1932년으로, 창립 14년 뒤의 일이었다.
회사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서류의 날짜와 회사가 스스로 고른 날짜, 두 가지가 있다. 어느 쪽이 맞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창업한 날 또한 회사가 나중에 다시 고를 수 있는 숫자였다.
확인한 범위
한계를 적어 둔다. 이 글의 숫자는 모두 회사사, 기업사 사전, 본인의 회고록을 근거로 한 제3자의 정리에 따른 것이다. 회사 공식 사이트의 연혁 페이지는 가져오지 못했고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소켓이 팔린 정도 같은 숫자는 본인의 회상에서 나왔을 수 있으며, 당시의 장부와는 다르다. 애반 수주와 납품의 정확한 날짜도 알 수 없다.
자사 제품의 실패와 남의 부품으로 번 80엔
파나소닉의 첫 1년을 숫자로 늘어놓으면 이야기의 순서와는 조금 다른 모양이 보인다. 밑천은 직장에서 받은 돈이 중심이었고, 첫 자사 제품은 열흘에 10엔 미만이었다. 회사를 이어 준 것은 남이 주문한 부품의 이익 80엔이었다.
전설은 개량 소켓의 발명에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숫자 위에서 사업을 살린 것은 발명보다 수탁 일 쪽이었다. 자기 제품으로 나가고, 남의 일로 잇고, 그러고 나서 자기 회사를 만든다. 창립 날짜는 그 순서의 끝에 놓여 있다.
이 글이 대단하다고 느꼈다면
이 칼럼은 Small Start에 수록된 사례(모두 출처를 밝힌 공개 정보)의 집계와 공개 정보 분석에 근거한 편집부의 견해입니다. 특정 사업·투자·부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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